보도자료

[중앙일보] 문훈숙 단장, 유니버설발레단 창단 40주년 인터뷰(상.하)

2024.05.30

[중앙일보]
"발레? 시집 못 가" "한국인은 무다리"…이런 말 견뎌낸 맏언니 [유니버설발레단 40년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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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40주년을 맞은 유니버설발레단. 문훈숙 단장(왼쪽에서 두번째), 김양현 공연사업1팀장(맨 왼쪽), 정연주 의상감독(왼쪽에서 세번째),
강낙천 조명감독(맨 오른쪽)이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발레단에서 포즈를 취했다. 강미선 수석무용수는 연습 일정으로 단체 사진 촬영엔 함께 하지 못했다.


유니버설발레단(UBC)이 창단 40주년을 맞았다. 마흔살이 된 UBC는 한국을 대표하는 민간 발레단체로 우뚝 섰다. 곡절을 견뎠기에 흔들리지 않는, 이른바 불혹(不惑)에 이른 UBC의 오늘과 내일을 빚는 5인을 만났다. '백조의 호수'와 같은 클래식은 물론, '심청', '춘향', '코리아 이모션 정(情)'과 같이 한국 특유의 정서와 몸짓을 발레로 엮어낸 일군의 작품은 UBC가 일구어낸 쾌거다. 발레단을 이끄는 문훈숙 단장, 지난해 최고의 영예인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를 수상한 강미선 수석무용수의 인터뷰부터 소개한다.

발레 무대의 빛과 그림자를 아우르는 5인을 통해 한국 민간 발레의 얼굴이 된 UBC의 과거와 현재, 더불어 미래를 짚어본다. 이들을 찾아간 지난달 16일 오후 유니버설발레단은 창단 40주년 공연 '로미오와 줄리엣' 연습 열기로 후끈했다. 케네스 맥밀란 경 안무 버전으로 올라가는 공연은 5월 10~12일 예술의전당 무대를 수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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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40주년을 맞은 유니버설발레단. 곡절도 많았다. 왼쪽부터 문훈숙 단장, 김양현 팀장, 정연주 의상감독, 강낙천 조명감독.


문훈숙 UBC 단장 "韓 발레 나침반...민간 국가대표 자신감"
발레 무용수는 몸을 조각한다. 골격과 근육을 매일의 연습으로 다듬고 깎아내 천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그 과정은 피 땀, 눈물을 동반한다. 연습실에 반창고와 상비약이 준비되어 있는 까닭. 그렇게 빚어진 결과물인 발레 무용수들의 몸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발레리나의 클래식 튀튀가 다리 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도록 디자인 된 데는 미학적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처음엔 이를 단순 노출로 곡해하는 이들이 있었다. "발레하면 시집 못 간다"는 말이 돌았던 시절. 문훈숙 UBC 단장이 이젠 미소로 추억하는 때다. 문 단장은 "창단 40주년 역사를 정리하며 보니, 가슴이 다시 벅차올랐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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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발레단의 문훈숙 단장. 


Q : UBC의 불혹, 축하한다. 소감은.
A : "한때 한국은 발레의 불모지로 통했지만 이젠 세계 정상이다. 무용수 시절, '세계 정상을 향하여'라는 문구가 연습실에 적혀있곤 했는데, 그 목표가 이뤄졌다는 게 감격스럽다. 한국 발레의 발전 과정은 UBC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눈물이 나온다. 1세대 임성남 국립발레단장 같은 분들께서 먼저 길을 뚫어주셨고, 그 길을 고속도로로 다져온 과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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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훈숙 단장은 여전히 리허설도 열정으로 챙긴다.
 

Q : 40년이라는 역사 동안 곡절도 많았는데.
A : "초창기엔 무용수가 모자라서 당시 한국에 초빙돼온 (해외) 선생님들이 '한국에서 발레단 운영은 무리 아닌가'라는 걱정도 하시곤 했다. 발레는 매일 연습해야 하는데 1주일에 3~4회만 수업을 하는 일정밖에 주어지지 않아 실제 투쟁을 해서 바꾼 사례도 있다고 들었다. 당시 선생님들은 '모든 게 전투였다'고 표현하곤 했다. 최근의 팬데믹도 빼놓을 수 없다. 10개월 동안 공연을 못한 건 충격이었다. 그래도 정부 지원 등 덕에 버텨냈다. 무용수들에게도 고맙다."

Q : UBC가 세계 발레계에 갖는 의미는.
A : "'춘향'과 '심청'을 해외 무대에 올렸을 때, 관객들 반응이 떠오른다. 당시 공연 전엔 '한국인 특유의 무다리 체형으로 발레가 가능하겠느냐'거나 '한국적 소재는 발레와 안 어울린다'는 반응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무대로 증명했다. 앞으로도 융복합 기술 등을 활용해 발레 장르의 외연을 넓혀가고 싶다. '코리아 이모션 정(情)' 처럼 한국적이면서도 새로운 작품을 계속 올리며 발전해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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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이 '로미오와 줄리엣' 리허설에서 무용수들에게 지도를 하고 있다
 

Q : 창작 발레 원동력은.
A : "초창기엔 아무래도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쪽 선생님들이 많이 와주셨고, (미국 발레의 아버지로 부리는 조지) 발란신의 '세레나데' '후 케어스(Who Cares?)' 등을 공연했다. 그러다 1990년대엔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과의 인연으로 제2의 도약을 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쳤기에 한국만의 창작발레를 만들 수 있었다."

Q : 무용수 vs 단장의 삶은.
A : "무용을 은퇴하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압박감이 덜할 줄 알았는데 정반대였다(웃음). 덜덜 떨릴 정도로 긴장된다. 무엇보다 기쁠 때는 무용수들이 호평을 받을 때, 슬플 때는 무용수들이 떠나갈 때다."

Q : 50주년, 100주년의 UBC는 어떤 모습일까.
A : "한국 발레가 1.0의 개척, 2.0의 성장 시대를 거쳐 이젠 3.0에 이르렀다. (국립발레단) 최태지 (전) 단장과 '언니' '동생'하며 같이 성장했던 시절도 떠오른다. 씨앗이었던 한국 발레가 나무로 우뚝 섰는데, 뿌리를 더 견고히 내릴 때다. 미국 역시 각 지역 발레단이 튼튼하기에 ABT와 뉴욕시티발레단(NYCB) 등이 탄탄한 것처럼, 민관이 함께 아름다운 상생과 협력을 통해 균형발전 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

강미선 수석무용수 "UBC와 함께 성장해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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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선 수석무용수가 '돈키호테'의 시그니처 점프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달 16일, 유니버설발레단의 크고 작은 연습실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5월 10~12일 무대에 올리는 '로미오와 줄리엣' 연습 때문이다. 봄날이 무색하게 한여름 같은 열기가 가득했다. 금지된 사랑의 달콤쌉싸름함을 연기하는 강미선 수석무용수는 줄리엣 그 자체였다. 그는 발레단 스탭과 후배 무용수들에게도 인망이 두텁다. 연습 중에도 "40주년을 위해서라면"이라며 인터뷰에 응한 그의 미소는 수줍고도 밝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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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 강미선 수석무용수.


Q : 올해는 강 수석 UBC 입단 22주년이기도 한데.
A : "태어난 해 바로 이듬해에 UBC가 생겼으니, 함께 성장하는 느낌이다. 선배들과 선생님들께서 잘 일구어 주셨기에 이렇게 춤 출 수 있어서 감사하다. 사실, 우리 무용수들은 발레단의 가장 마지막 결과물이다. 우리가 무대에 서기 위해선 무대 옆 어두운 곳에서 의상을 한땀한땀 손질해주시는 분들, 무거운 막을 이동해주시는 분들, 조명을 비춰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걸 항상 기억한다. 그런 분들의 노고가 없으면 무용수도 없다. 40년 세월 동안 무대 안팎에서 땀흘리신 분들께 감사하다."

Q : 위기도 있었을 터다.
A : "아무래도 팬데믹 시기다. 2년 넘게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것,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체감했는데, 그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학교 때부터 발레와 한 순간도 떨어진 적이 없는 삶을 살았는데, 한순간에 이렇게 되다니 공허했다. 무용수라는 존재에 대해 돌아본 계기도 됐고, 관객과의 만남이 소중하다고 한층 더 느꼈다. 무대와 관객이 없다면 무용수인 우리도 없다."

Q : UBC 무용수로서 느끼는 바는.
A : "해외 무대에 나갈 때마다 특히 UBC만의 한국 발레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다. '심청'과 '춘향'을 출 때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한국만이 만들 수 있는 독창적 작품이면서도 아름다운 발레를 레퍼토리로 갖고 있다는 것이 자부심이다. 더 많이 알려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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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발레단 창작 발레 '춘향'에서 해후 파드되(남녀 무용수 2인무)를 추고 있는 강미선(오른쪽)·이동탁 수석 무용수.
 

Q : 선후배 동료들이 유독 신뢰하는데.
A : "제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발레단 무용수 모두가 다들 착하고 열심히 한다.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걸 못 견디고, 꾸준히 성실히 몰두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배운다. 오래 무대에 서다보니 가끔 타성에 젖을 때가 있는데, 열심인 후배들을 보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된다. 서로 응원하고, 간식거리 등 작은 선물들 서로 챙겨주는 따스한 모습이 좋다. 동료가 아니라 형제자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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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발레단 유병헌 예술감독(오른쪽)과 강미선 수석무용수.


Q : 무대에의 열정을 잃지 않게하는 원동력은.
A : "관객들의 환호다. 모든 무용수가 같은 답을 하지 않을까. 무용수들은 자기만족을 할 수 없는 존재다. 그렇지만 꾸준히 연마한 것을 무대에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갈채를 보내주실 때 벅찬 희열을 맛본다. 관객께 모든 걸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보답받을 때, 무엇보다 보람이 크다. 출산 직후 무대에 섰을 때 그 감격은 극에 달했다."

Q : 브누아 드 라 당스도 수상했는데, 한국 관객과 정부 등에 바라는 바는.
A : "민간 발레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조금 더 적극적 지원을 해주시면 바랄 게 없겠다. 차세대를 위해서도 그렇다. 인재들이 계속 배출되는데 설 수 있는 무대는 한정적이니, 아쉽다."

출처 :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6553)


"10초면 발레 의상 갈아입힌다"…무대 뒤 숨가쁜 이들의 보람 [유니버설발레단 40년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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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40주년을 맞은 유니버설발레단의 김양현 팀장, 문훈숙 단장, 정연주 의상감독, 강낙천 조명감독(왼쪽부터). UBC의 40년을 만들어온 이들이다.
강미선 수석 무용수도 인터뷰에 응했으나 연습 일정으로 촬영엔 함께하지 못했다.


발레는 종합예술이다. 무용수가 관객의 갈채를 받기까지, 그 무대의 의상과 조명, 장치와 홍보를 꾸리는 스탭들의 노고가 소중한 이유다. 클래식 튀튀부터 장식 소품까지 도맡아온 정연주 의상감독,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일 없이 묵묵히 비춰온 강낙천 조명감독, 공연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해온 김양현 공연사업1팀장을 만났다. UBC의 40년은 이들 없이는 불가능했다.

문 단장과 강 수석이 무대 위를 책임진다면, 무대 뒤에서 남몰래 땀 흘리는 이들도 있으니, 정연주 의상감독과 강낙천 조명감독, 김양현 공연사업1팀장에게도 만남을 청했다. 이들의 손길이 없다면 '잠자는 숲속의 미녀' 오로라 공주도, 심청도 관객을 만날 수 없다

정연주 의상감독 "없으면 있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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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유니버설발레단 의상감독의 보물창고. 


발레 지도자들이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의상에 아름다운 보석 장석이 그냥 박혀 있는 게 아니다. 관객이 그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도록 포즈를 잡고 움직여라." 의상의 작은 장식 하나에도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튀튀부터 머리장식 티아라까지, 의상감독의 머리와 손발이 항상 바쁘다. 공연에 따라 때론 10초만에 무용수의 의상을 교체해야 하는 일명 '퀵 체인지'도 흔하다. 유니버설발레단(UBC)의 정연주 의상감독은 이 일을 27년째 해오고 있다. 그런 그의 좌우명은 "없으면 있게 하라"라고 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Q. UBC의 40년 중 27년을 함께 해왔는데.  
A. "사람도 그렇듯 40년이란 세월은 기회의 다른 이름인 것 같다. 이젠 뭘 잘하는 지 알고, 뭘 새롭게 개척해야 할지도 보인다.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을 더 자신있게 추진할 수 있는 시기라고 본다. 쉽진 않았다. 입사하고 IMF가 있었고, 최근 팬데믹까지 여러 위기를 겪었다. 그래도 항상 생각했던 게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공연의 질을 떨어뜨리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하자는 것. 무용수부터 스탭까지 오히려 위기가 올 때마다 단결했다. 전화위복이었다."  

Q.팬데믹 후 많은 게 달라졌을 텐데.  
A. "원단이며 무용 관련 용품을 제작해오던 작은 기업들이 문을 닫았고, 숙련된 장인들이 일을 그만뒀다. 선택지가 사라진 상황에서 우리는 계속 창작 작품을 올려야 하고,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러 사정으로) 토슈즈(포앵트 슈즈) 수급이 어려워진 것도 문제다. 돈을 주겠다고 해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래서 대체재를 찾는 게 중요하다. 없으면 있게 해야 하니까."  

Q. 의상감독이 된 계기는.  
A."의상을 전공한 뒤 서양화를 더 공부했는데 어느날 그런 생각이 들더라. 공연을 보는데 무대 전체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같은 거다. 조명에서 쏟아지는 아름다운 빛, 반짝이는 의상과 무용수들, 무대의 배경 등. 무용수에게 의상을 입히는 건 물감으로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는 맥락과 맞닿아있었다. 일이 너무 즐거웠고, 지금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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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발레단의 의상은 모두 정연주 감독의 손을 거친다. 

 

Q. UBC 소셜미디어에서 '퀵 체인지' 쇼츠 영상이 화제였다.  
A. "무용수들은 음악에 맞춰 무조건 달려나간다. 때론 10초도 안 되는 시간에 무용수 한 명에 세 명이 달라붙어서 의상과 장식을 교체할 때도 있다. 바늘에 손을 찔리는 일도 다반사이지만, 무용수 의상이 잘못되는 게 더 (마음) 아프다. 특히 파드되(pas de deux, 2인무)가 의상 손상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미리 고정을 더 단단히 해둔다. 무대에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가 있다.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는 게 습관이 됐다. 오늘의 공연을 보며 다음의 의상을 구상하고 준비한다. 다음에 저 단원은 의상의 뒤를 더 조여줘야겠다는 생각 등등이다. 다 기억할 수가 없어서 노트를 항상 적는데, 그걸 (문훈숙) 단장님이 보시고 놀라시더라. 발레는 다 같이 잘해야 한다. 그래서 종합예술이다."  

Q.UBC 50주년, 100주년에 대한 기대는.  
A. "우리는 우리만의 창작 발레 작품을 갖고 30여년에 걸쳐 계속 업그레이드해오고 있다는 게 강점이다. '심청' 초연에 쓰였던 의상이 아직도 있다. 지금은 등장하지 않는 불가사리 캐릭터의 옷도 잘 관리하고 있을 정도다. 앞으로도 우리가 하는 매일의 일이 미래를 위한 노력이라고 보고 계속 열심히 즐겁게 할 뿐이다."  
강낙천 조명감독 "위기 후 더 똘똘 뭉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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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발레단의 강낙천 조명감독. 콘솔은 그의 집이기도 하다.

 

무용수들에게 빛을 주고 거두는 일. 강낙천 유니버설발레단(UBC) 조명감독이 15년째 해오는 일이다. 조명감독의 일은 조명 그 이상이다. 음악의 박자를 미리 꿰뚫고 있어야 하며, 무용수들의 동선을 숙지하고 그 타이밍에 맞춰 다채롭게 조명을 내줘야 한다. 무대를 마무리하고 때로 번아웃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일이 즐겁다고 한다. "희열이 장난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그가 평생 잡아온 조명처럼 빛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Q. UBC 40주년 소감은.  
A.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는데, 대견하다. 민간 예술단체가 40년을 꾸려왔다는 건 뿌듯한 성취가 아닐까. 하지만 이제 또 다른 시작이라고도 느낀다. 인생도 마흔부터 새로 시작하는 거니까. 개인적으론 15년차가 됐는데, 팬데믹 등을 거치며 외려 더 단단해졌다고 느낀다. 팬데믹 때 상실감을 서로 창작작품을 만들어내며 이겨냈고, 더 똘똘 뭉치게 됐다."  


Q. 조명감독이 된 계기는.  
A. "아는 선배 통해 스승님을 소개 받고 천직이라고 느꼈다. 국립발레단에서 먼저 2001년 시작했고 스승님을 따라 UBC로 왔다. 조명이라는 게 참 재미있는 게, 발레 블랑(ballet blanc, 백색 발레)라고 흰색 조명만 쓰면 안 된다. 하얀 색에 푸른 색 또는 붉은 색을 살짝 섞어 포인트를 줘야 한다. 전체적으로 파란 색을 쓸 때도, 파란 색 일색이면 무대가 살지 않는다. 붉은 색 등 다른 색을 섞는 일명 '컬러 믹싱' 작업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무용수와 의상을 빛나게 해준다는 게 엄청난 보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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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공연 무대를 보며 종종 눈물을 흘린다는 유니버설발레단의 강낙천 조명감독.

 

Q. 무대 전체를 봐야하는 일이라 더 쉽지 않을 듯한데.  
A. "무대 당일엔 주로 객석 뒤에 조명 콘솔(제어장치) 쪽에서 보니 아무래도 세밀한 부분까지 팀워크를 발휘하게 되더라. 무용수의 타이즈 색상도 똑같아야 하는 게 발레라는 엄격하지만 아름다운 예술이어서다. 고백하자면 몇 번 울기도 했다(웃음). 무대를 보면서 감동해서다. 최근엔 '춘향'에서 (강)미선 수석무용수가 해후 파드되에서 몽룡의 가슴을 치며 왜 이제 왔냐는 연기를 하는 장면에서 눈물이 왈칵했다. 아마 창작 작품이라서 더 그랬던 거 같기도 하다. 공연 3~4일을 위해 몇 달을 그 생각만 했으니. 재미있는 건, 팬데믹도 겪고 다양한 창작을 하다보니 이젠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는 점이다."  

Q. UBC만의 장점은.  
A. "우리는 조명과 의상까지 무대의 중요한 부분의 감독이 상주를 한다. 외부 디자이너를 쓰지 않고 상주 감독이 있다는 건 장점이다. 우리 것은 우리가 직접 다 만든다는 자부심이 크다. 그러다보니 여러 노하우들이 쌓였고, K발레를 위한 창작 작품도 자신있게 만들 수 있다. 지금은 우리가 '오네긴'이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판권을 사와서 공연을 하지만, 언젠가 우리도 '춘향'이나 '코리아 이모션 정'의 판권을 해외 발레단에 판매할 때를 꿈꾼다." 


김양현 공연사업1팀장 "민간발레단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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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발레단의 공연은 이 사람을 통해 관객을 만난다. 김양현 공연사업1팀장.

어떤 이웃은 운명을 바꾼다. 어린 시절 김양현 유니버설발레단(UBC) 공연사업1팀장의 아파트 같은 층 이웃사촌도 그랬다. "발레단에서 일하는 신사 아저씨"라고 김 팀장이 기억하는 그가 어느날 "선물이다"라며 티켓을 내밀었다. 1988년 UBC의 '심청' 공연이었다. 김 팀장은 그날 꿈을 봤다. "프로그램북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는 그는 "공연이라는 게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구나"를 체감했다고 한다. 그리고 2019년, 그는 UBC의 공연사업을 담당하는 팀장으로 '심청'을 올렸다. 그는 "묘하고 벅차고 눈물이 나더라"며 "이렇게 결국, 원하는 자리에 왔구나, 꿈을 이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Q. 기억에 유독 남는 공연은.  
A. "아무래도 2019년 '심청'이다. 열살 때의 내가 떠올랐다. 춤이라는 아름다움을 처음 봤을 때의 그 감동이 되살아났다. 한국의 이야기를 갖고 이런 표현을 할 수 있구나 싶었는데, 그 공연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음에 감사하다."  

Q. 그후 팬데믹이 닥쳤다.  
A. "발레단 인원을 무용수까지 포함해 3분의 1을 감축해야 했다. 수석 무용수들은 '내 월급을 깎아도 좋으니 후배들이 안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고, 스탭들도 '비용 절감은 해도 공연의 질은 유지하도록 어떻게든 되게 하겠다'며 똘똘 뭉쳤다. 어찌보면 전화위복이었지만 다시 겪고 싶진 않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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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40주년을 맞은 유니버설발레단의 문훈숙 단장, 김양현 팀장, 정연주 의상감독, 강낙천 조명감독(왼쪽부터)이
16일 오후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Q. 민간 발레단 UBC에서 일한다는 것의 의미는.  
A. "많은 민간발레단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UBC는 40년 간 한결같이 무대를 올렸다는 의미가 크다. 클래식뿐 아니라 창작 레퍼토리도 꾸준히 만들어냈다. 시대의 부침은 있을지언정,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향한 정성은 계속 쏟았다. 앞으로 50주년, 100주년에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한결같다는 것은 발레의 기본이자 핵심이기도 하다."  

Q.바라는 바는.  
A. "발레 무용수들은 은퇴하면 우아하게 살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일 때가 많다. 민간이라서 할 수 있는 영역도 개척하면서, 여러 지원도 더 적극적으로 주어진다면 한국 발레계는 더 폭발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UBC는 민간발레단의 엄마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파이를 독식하는 게 아니라, 함께 파이를 키워가며 상생하고 싶다." 


출처 :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6549)